미술관 앞에서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하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타라 2010. 12. 24. 23:50
요즘엔 참 이상한 체험들을 많이 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으며, 그 이후에 매일매일 그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소재에 대해서 포스팅해야지 생각했던 걸 바로 그날 다른 곳에서 (우연의 일치로) 해당 소재에 대한 관련 뉴스를 접하게 된다든가 하는 그런...

어제 치과에 갔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져서 탁자 위에 놓여있던 신문을 봤다. 그 병원엔 신문도 종류별로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앞에 환자가 많이 밀렸던 탓에 기다리면서 3종의 신문을 다 읽어볼 수 있었다. 물론 발췌독으로... 어제 치과에서 읽었던 한 신문의 '문화'면 기사에 '화가 벨라스케스(Velazquez)가 진품 여부에 관한 오해를 벗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 내용을 읽으며 '벨라스케스?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하면서 조금 반가웠는데, 실은 내가 다음 포스트 내용으로 쓸려고 했던 그림의 화가이다. 바로 어제 '다음엔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의 작품에 대해 써 보아야지..' 했었고,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뒤 '병원 대기실에서 본 신문'에서 아까 전에 생각하고 있었던 그 이름을 발견하게 되니 '이건 우연의 일치인가?' 싶어 좀 신기했다.

그닥 많이 알려진 화가도 아니고, 무엇보다 여러 신문들에 나온 그 날의 '문화'면 기사라고 해 봤자 3~4개 정도 밖에 안되던데, 마침 내가 '아침에 다음 포스팅 소재로 생각하고 있었던 화가 이름'이 우연히 '저녁 무렵 병원에서 집어든 신문'에서 당일 바로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으니 말이다..(소재만 같을 뿐, 내가 쓰려고 했던 구체적인 내용은 어제 기사에 나온 내용과 다르다.)

궁정 화가 벨라스케스(Velazquez)


어제 기사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벨라스케스'에 관한 내용은 그가 그린 작품 중 한 점이 '위작 논란에 휘말렸다가 진품 여부가 가려져서 드디어 위작 누명을 벗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스페인의 궁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가 위작 논란에 휘말린 작품은 '젊은 시절 필립 4세(펠리페 4세)의 초상화'였다. 이 그림의 구도나 전반적인 느낌이 '기존의 벨라스케스 작품'과 달라서 그가 아닌 벨라스케스의 제자들이 그린 것으로 '위작 논란'이 불거졌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의 '과학적 감정' 과정을 거쳐, 최근엔 벨라스케스 본인이 그린 진품임을 인정 받았다고...

'미친 속도감'의 피카소가 평생 3만여 점에 가까운 그림을 그려내었다면, 꼼꼼하기로 유명한 벨라스케스는 일평생 동안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는 아니다. 그마저도 중간에 화재로 불타거나 소실된 게 있어서 현재 100여 점 정도의 작품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17세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는 돈 주앙의 고장인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태어났다. 25세 때 궁정 화가로 임명된 벨라스케스는 그 때부터 궁 안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필립 4세(당시의 왕 펠리페 4세)와 왕족들 그림을 주로 그렸다. 당시의 '화가'는 신분이 그리 높지 않았으며, 벨라스케스 역시 궁정 하인들과 비슷하게 오로지 왕을 위한 일을 하는 존재였다. 왕족들 가까이에서 지내고 왕궁에서 살아가는 등 '궁정 화가' 그러면 좀 화려해 보이지만, 여타 프리랜서 화가들에 비해 자유롭지 못한 면이 강한 듯하다..

당시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18세기 접어들어서 재평가된 벨라스케스 & 그의 작품은 여러 후배 화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벨라스케스의 작품 중에선 '시녀들(Las meninas)'이란 그림이 가장 유명하며, 벨라스케스보다 후대에 태어난 스페인 화가 피카소가 이 그림을 가지고 50편이 넘는 모작을 남기기도 했다. 기타, 다른 화가들도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을 단골로 리메이크하였다.

피카소가 모작하여 그린
'시녀들(Las meninas)'

피카소가 큰 영감을 얻어서 여러 차례 모작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라스 메니나스)'은 미술사에서 굉장한 논란을 불러온 화제작 & 걸작이다. 개인적으로 요즘 읽고 있는 책 내용이 이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아서 며칠 전부터 계속 그 의미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며, 그 때문에 벨라스케스의 이 작품에 관해 한 번 포스팅해 보고 싶었다.

'시녀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중앙엔 스페인 국왕 필리페 4세의 딸인 '마르가리타 공주'의 네 살 무렵 때의 모습이 나오고 그녀와 시녀들, 정면 거울에 비친 필리페 4세 부부 & 이 작품을 그린 화가 벨라스케스 등 총 11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이 작품 논란의 핵심 키 포인트는 '거울'이다. 그림 왼쪽의 '캔버스 앞에 서 있는 화가 벨라스케스가 이 쪽(현재 우리가 이 그림을 보는 방향)을 바라보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 때문에 이 그림의 원래 모델은 <(화가와 반대 방향에 있는) 거울 속에 비친 국왕 부부>이고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들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방문한 것이란 주장과 원래 모델은 <마르가리타 공주와 그녀를 보살피고 있는 시녀들>이며 그 때 국왕 부부가 작업실을 찾았단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벨라스케스, 화제의 그림 '시녀들
(Las meninas)'

화가 벨라스케스(Velazquez)가 자신을 화폭에 담기 위해 그린 그림이란 얘기도 있다. 이렇게 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보면 저렇게 보일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내포한 그림인 셈이다.

자신감이 대단했던 화가 클림트는 이 그림을 감상하고서 "이 세상에 화가는 단 둘 뿐이다. 벨라스케스와 나.."라는 말을 하며, 벨라스케스를 극찬하기도 했다. 이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어진 프랑스 작곡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곡과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도 여러 편 나왔다. <벨라스케스 미스테리>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등..

이 그림이 미스테리적인 작품으로 남아있는 건,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것이 실재이고, 어떤 것이 환상인가..?'라는 의문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주체가 객체가 되고, 역으로 객체가 주체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책 내용 역시, 그런 류의 의문을 담고 있었다.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 논란의 그림 '시녀들'은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 작품인데, 그 안을 들여다 보면서 '깊은 사고의 세계'로 빠져들고 싶은 이들에겐 꼭 추천하고 싶은 그림이다..